
1983년, 리처드 데니스는 신문 광고로 지원자를 모집했습니다. 14명을 뽑아 2주간 트레이딩 규칙을 가르쳤죠. 5년 뒤 이들이 번 돈은 약 1억 7,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750억 원이었습니다.
그 규칙이 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놀라운 건 규칙 자체가 어렵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도 공개되어 있습니다. 근데 왜 모두가 이걸로 돈을 못 벌까요. 그 이유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실험의 시작 — "트레이더는 만들어질 수 있다"
리처드 데니스(Richard Dennis)와 윌리엄 에크하트(William Eckhardt)는 오랜 친구였습니다. 둘 사이에 내기가 하나 있었죠.
데니스: "좋은 트레이더는 가르칠 수 있다." 에크하트: "아니다. 타고나는 거다."
1983년 데니스는 직접 검증에 나섭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광고를 냈고, 1,0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14명을 선발했습니다. 나이도, 배경도, 경력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데니스는 이들에게 자신의 트레이딩 시스템을 모두 알려줬습니다. 실계좌와 함께요. 이들을 "터틀(Turtles)"이라 불렀습니다. 데니스가 싱가포르 거북이 농장을 방문한 뒤 "트레이더도 이렇게 길러낼 수 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터틀 시스템의 핵심 — 두 가지 진입 전략
터틀 트레이딩의 뼈대는 추세 추종(Trend Following)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닙니다. 시장이 방향을 만들면, 그냥 탑니다.
진입 전략은 두 가지였습니다.
시스템 1 — 20일 돌파
가격이 최근 20일 고점을 돌파하면 매수합니다. 반대로 20일 저점을 뚫으면 공매도 진입이고요.
청산 기준은 10일 저점입니다. 가격이 10일 저점 아래로 내려오면 포지션을 닫습니다.
단, 직전 신호가 수익을 냈다면 이번 신호는 건너뜁니다. 연속으로 진입하지 않는 겁니다. 이 필터 하나가 손실을 상당히 줄여줍니다.
시스템 2 — 55일 돌파
55일 고점 돌파 시 매수, 20일 저점 이탈 시 청산하는 구조입니다. 시스템 1보다 느리지만 더 큰 추세를 잡기 위한 전략이죠.
터틀들은 이 두 시스템을 동시에 운용했습니다. 시스템 1은 중단기 추세용, 시스템 2는 장기 대추세용입니다.
N — 변동성으로 포지션 크기를 정한다
터틀 트레이딩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ATR(Average True Range) 기반 포지션 사이징입니다.
터틀들은 ATR을 "N"이라고 불렀습니다. N은 최근 20일간의 평균적인 일일 가격 변동폭입니다.
공식은 이렇습니다.
- 1 Unit = 계좌 잔고 × 1% ÷ (N × 계약당 달러 가치)
- 1회 거래에서 최대 2N 리스크(계좌의 약 2%)만 부담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N이 커지므로 포지션 크기가 작아집니다. 조용한 시장에서는 N이 작으니 더 많이 들어갑니다. 리스크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이 개념이 왜 중요하냐면,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는 반대로 합니다. 변동성이 클 때 더 흥분해서 많이 투자하고, 조용할 때는 별 관심이 없죠. 그게 손실을 키우는 구조입니다.
손절 규칙 — 2N 스톱
진입 후 손절 기준은 진입가에서 2N 아래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종목의 N(ATR)이 5,000원이라면, 손절라인은 진입가에서 10,000원(2N) 아래에 설정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포지션을 추가로 쌓을 때(피라미딩)도 기존 단위의 손절을 같이 올려줍니다. 전체 리스크가 계좌의 4~8%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거죠.
추가 매수(피라미딩) — 추세에 올라타는 방법
터틀 시스템에서 수익의 대부분은 큰 추세에서 납니다. 그래서 추세가 확인될수록 포지션을 늘립니다. 이것이 피라미딩입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진입 후 가격이 0.5N 오를 때마다 1 Unit씩 추가 매수합니다. 최대 4 Unit까지 쌓을 수 있습니다.
이미 오른 가격에서 더 산다는 게 직관에 반하죠. 하지만 추세 추종의 핵심은 "맞을 때 크게 먹는 것"입니다. 손실은 작게 여러 번 내더라도, 한 번의 큰 추세에서 그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 남습니다.
터틀 트레이딩의 수익 구조 — 왜 손실이 많아도 돈을 버나
터틀 전략의 승률은 생각보다 낮습니다. 40% 안팎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0번 거래하면 6번은 손실을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버냐고요?
손익비(Risk-Reward Ratio) 때문입니다. 손실은 2N으로 엄격히 제한하지만, 수익은 추세가 이어지는 한 계속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긴 거래의 평균 수익이 진 거래의 평균 손실보다 훨씬 큽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60번 작은 손실을 보더라도, 40번의 승리 중 몇 번에서 10배, 20배 수익을 냅니다. 그 몇 번이 전체 손실을 다 덮고도 남는 겁니다.
그럼 왜 다들 이 규칙으로 돈을 못 버나
규칙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이유는 심리입니다.
손절: 2N에 도달하기 전에 "조금만 기다리면 회복되겠지"라는 생각에 버팁니다. 결국 더 큰 손실로 이어집니다.
익절: 수익이 나면 빨리 팔고 싶은 충동이 옵니다. 그래서 큰 추세를 타지 못하고 용돈 벌이에 그치죠.
드로다운 구간: 연속 손실이 10번, 20번 이어지면 시스템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략이 이제 안 통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포기합니다. 딱 그 시점에 큰 추세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터틀 실험에서도 같은 규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별 수익 차이가 컸습니다. 규칙을 얼마나 충실히 지켰느냐의 차이였습니다.
현대 시장에서도 터틀 트레이딩은 통할까
솔직히 말하면 원형 그대로는 예전보다 수익률이 낮아졌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전략 자체가 너무 알려졌습니다. 20일, 55일 돌파를 보는 플레이어가 많아지면서 가짜 돌파(false breakout)가 늘었습니다.
둘째,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변했습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늘면서 추세가 예전보다 빠르게 반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틀 트레이딩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 원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 변동성 기반 포지션 사이징 — 리스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개념
- 손실은 빠르게, 수익은 길게 — 손익비 관리의 기본 원칙
- 감정 배제와 시스템 준수 — 어떤 전략이든 꾸준히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
한국 주식 시장에 적용할 때 고려할 점
터틀 시스템은 원래 선물(futures) 시장용으로 설계됐습니다. 한국 주식 현물에 그대로 적용하면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공매도 규제로 숏 포지션 진입이 제한적입니다. 시스템 2의 55일 돌파는 한국 시장의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가짜 신호가 잦을 수 있습니다.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은 유동성 문제로 진입·청산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적용한다면 추세 추종의 원칙은 유지하되, 돌파 기간을 조정하거나 다른 필터(거래량, 섹터 강도 등)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변형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터틀 트레이딩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규칙 자체가 아닙니다. "좋은 트레이더는 만들어질 수 있다"는 명제, 그리고 그 전제 조건이 감정을 배제한 시스템의 일관된 실행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원칙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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