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월 30일) 목요일 미국 증시가 열리기 전, 켄 그리핀의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 트레이딩 데스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상대는 2001년생, 올해 겨우 20대 중반인 전직 오픈AI 연구원이 세운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 LP)'. 용건은 단순했습니다 — 롱이든 숏이든 가리지 않고, 보유한 상장주식 포지션 전부를 한 블록으로 사가라는 것. 불과 한 달 전까지 올해 최고 수익률(439%)을 자랑하던 펀드가, 하루아침에 공개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순간이었습니다.
📌 관련해서 최근 코스피 -10.84%, 코스닥 -7.72% — 서킷브레이커까지 부른 반도체 쇼크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이번 사태의 진짜 도화선이 된 시장 상황이라 함께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165페이지 에세이로 월가를 흔든 '01년생 천재'
레오폴드 아셴브레너는 독일에서 의사 부모 밑에서 태어나, 15살에 미국 컬럼비아대에 홀로 입학한 이력으로 이미 유명했습니다. 2021년 19살의 나이로 경제학·수학통계학을 복수전공해 수석 졸업했고, 효율적 이타주의(EA) 학내 모임을 공동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 오픈AI의 '슈퍼얼라인먼트' 팀에 합류했지만, 2024년 정보 유출 의혹(본인은 부인)으로 해고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발표한 165페이지짜리 에세이 "Situational Awareness"가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월가를 동시에 강타했습니다. 핵심 주장은 명확했습니다 — AGI(범용인공지능)가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하고,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것.
3,200억 원이 45조 원 펀드가 되기까지
레오폴드는 이 논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2024년 말, 스트라이프 공동창업자 콜리슨 형제와 Nat Friedman, Daniel Gross, 제인 스트리트 등의 자금을 받아 약 2억 2,500만 달러(약 3,200억 원) 규모로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 LP)를 출범시켰습니다.
전략은 명료했습니다. 블룸에너지·샌디스크·코히런트·타워세미컨덕터 등 AI 인프라 관련주와 AI 호스팅으로 전환 중인 비트코인 채굴업체를 골라 24~30개 종목에 집중 매수하고, 이후 SK하이닉스·코어위브·네비우스· 마이크론까지 편입했습니다. 반대로 AI가 마진을 잠식할 것으로 본 어도비 등 소프트웨어 기업 주식은 공매도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026년 상반기(6월 30일 기준) 순수익률 439% — 올해 가장 성과가 좋은 헤지펀드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운용자산은 출범 2년도 안 돼 최대 450억 달러(약 45조 원)까지 불어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TechTimes)
무너진 하루 — 레버리지 4배의 역습
문제는 레오폴드가 자랑하던 이 수익률 뒤에 숨어있던 레버리지였습니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골드만삭스·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 세 곳의 프라임 브로커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약 4배 레버리지로 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CNBC 보도로 확인됐습니다.
7월 한 달, 이 펀드가 집중 보유하던 SK하이닉스·코어위브·네비우스·마이크론·블룸에너지 등 AI 인프라 관련주가 일제히 35~47% 급락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코스피가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하며 하루 만에 -10.84% 빠졌던 바로 그 반도체 쇼크입니다. 여기에 '떨어질 것'이라 베팅했던 어도비 등 소프트웨어주는 오히려 상승 반전하면서, 롱과 숏 양쪽에서 동시에 손실이 났습니다.
4배 레버리지 위에서 양방향 손실이 겹치자 세 프라임 브로커가 동시에 추가 담보(마진콜)를 요구했고, 결국 펀드는 보유 상장주식 포지션 전부를 시타델에 블록딜로 넘기며 강제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집중 포지션의 저주" — 공매도 표적이 됐다는 분석
레버리지를 크게 쓴 상태에서 소수 종목에 쏠린 포지션은 시장에 알려지기 쉽습니다. 레오폴드의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어떤 종목을 얼마나 들고 있는지가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던 만큼, 일단 포지션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다른 트레이더들이 같은 방향으로 베팅을 얹으며 낙폭을 더 키웠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SpotGamma). 투자 고수의 화려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레버리지와 쏠림이 만나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남긴 히든카드 — 앤스로픽 지분
다만 레오폴드의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비상장 지분으로 보유하던 앤스로픽 주식(약 50억 달러, 약 7조 2,000억 원 상당)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돼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코노미트리뷴) 법적으로 청산된 것은 아니고, 앞으로는 상장주식 트레이딩 펀드가 아니라 비상장 지분 위주의 사모투자 성격으로 운영될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와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남긴 이번 일을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곱씹어보면 두 가지가 남습니다. 첫째,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손실도 똑같이 증폭시킨다는 점입니다. 4배 레버리지가 아니었다면 이번 한 달 낙폭은 뼈아파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롱과 숏을 나눠 헤지했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AI 인프라 매수·소프트웨어 매도라는 '양방향 베팅'이 오히려 같은 시기에 동시에 어긋나면서 손실이 배가됐습니다.
439%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 4배 레버리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단기 수익률만 보고 전략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01년생 천재의 몰락이 아니라, 레버리지의 몰락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